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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처펀드(Vulture fund)’ 혹은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로 불리는 엘리엇 펀드(Elliott Associate)와 한국 최대 재벌인 삼성그룹 간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엘리엇은 지난 6월4일 삼성물산의 지분 7.12%를 확보하며 3대 주주로 떠오른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는 기수(旗手)로 떠올랐다. 삼성을 상대로 각종 소송을 제기하고  합병의 “불공정성”과 “불법성”을 주장하면서 국내외 합병 반대 세력을 끌어모으고 있다. 반면 삼성그룹은 합병의 당위성과 적법성을 내세우며 합병 찬성 세력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이 분쟁은 합병을 통해 탄생하는 ‘통합 삼성물산’을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만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3세  경영체제를 확립하려던 삼성의 계획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분쟁은 외국의  ‘행동주의 펀드’가 국내 최대 재벌 그룹의 핵심 의사결정에 개입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첫번째 시도이고 이에 따라 한국의 재벌들이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지, 한국 정부나 기관투자자들은 어떤 방침을 세워야 할지 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깊이있는 관찰과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엘리엇과 삼성 간 분쟁에서 얘기되는 합병비율 산정 “불공정성”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다룬다. 특히 시장가격이 잘못됐다고 얘기할 때에는 누가 시장가격을 조작하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식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행동주의 펀드들이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는 얘기는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주가를 조작하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같은 맥락에서 행동주의 펀드에 관한 국제비교연구들은 그들의 행동이 주가를 단기적으로는 움직이지만 기업가치를 지속적으로 상승시키는 사례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어서 엘리엇과 행동주의 펀드들이 실제로 어떤 과정을 통해 ‘주주 이익’을 달성하는지를 개관한다. 엘리엇에게는 ‘국제 알박기 펀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페루, 아르헨티나, 콩고 등 제3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다수가 합의하여 진행되던 중남미 부채탕감안(브래디 플랜), 국제원조, GM회생 작업 과정에 ‘알박기’를 해서 고수익을 얻어왔다.

 

 엘리엇은 ‘벌처펀드’라는 이름이 붙여진 선구자일 정도로 행동주의 펀드의 극단에 서 있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공통적인 행동 양태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것을 ‘포퓰리즘을 활용한 이익 추구’로 설명한다. 소수주주들의 “정당한” 이익이 침해됐다며 이에 동조하는 다른 주주들을 규합하여 고수익을 얻어내는 전략을 종종 사용하는 것이다.


 한편 엘리엇과 삼성 간의 분쟁이 관련 당사자들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살펴본다. 이런 분쟁은 주주들 간에 사익(私益)에 따라 결정된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국익(國益)에 대한 고려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지분의 10% 이상을 보유한 2대 주주이다. 국민연금은 투자수익을 국익이라는 범위 내에서 거두어야 한다는 태생적 전제를 안고 있다. 국민연금이 이번 분쟁과 관련하여 국익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 결정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내기관투자자들도 국익에 대한 판단을 어느 정도 할 여지가 있다. 특히 한국경제가 잘 되어야만 자신들의 사익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넓어진다는 사실이 이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국인투자자이건 외국인투자자이건 삼성그룹의 다른 계열사에 함께 투자하고 있는 기관들은 삼성물산 주가의 향방 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계열사 포트폴리오 가치의 변화에 대한 판단에 따라 합병 찬성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한국 대기업들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배경에는 한국내의 반(反)재벌정서와 반(反)재벌정책이 있다. 반재벌정서의 포퓸리즘과 반재벌정책이 만들어놓은 지배구조상의 약점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정거래법을 시행하고 있고, 경영권 승계에 가장 비우호적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상법을 통해 ‘1주1의결권’ 원칙을 가장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나라이다. 함된다. 이 글은 그 이유를 강력한 반(反)재벌 정서와 이상향적 기업관, 이상주의적 경제민주화 논리가 결합된 데에서 찾는다.


 이 글은 이번 분쟁을 계기로 한국의 정책 담당자들과 식자(識者)들이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의 허상(虛像)에서 벗어나 세계경제 상황과 한국경제의 실제를 반영한 보다 현실적인 기업관에 기반을 두고 재벌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입한 ‘글로벌스탠다드’의 많은 부분이 단기 투기자본의 스탠다드를 ‘글로벌’한 것이라고 받아들인 측면이 많다. 이 글은 기업의 경영권 안정과 중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포이즌 필(poison pill)을 도입하고, 주식 장기보유자를 단기보유자에 비해 우대하는 차등의결권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벌의 경영승계와 관련해서는 지금처럼 제도적으로 이를 완전히 막기보다 다른 선진국에서 허용하는 수준에 맞추어 재단을 통한 승계가 가능하도록 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요약

1. 들어가는 말


2. 엘리엇-삼성 분쟁의 핵심 쟁점 – 누가 시장을 ‘조작’하나?

 

3. ‘주주 행동주의’와 엘리엇의 행태 – 국제 ‘알박기 펀드’?

 

4. ‘주주행동주의’와 포퓰리즘 – ‘반(反)재벌 동맹’의 규합

 

5. 사익(私益)과 국익(國益)의 관계에서 본 엘리엇-삼성 분쟁


6.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재벌정책 – 반(反)재벌 정서와 이상향적 기업관, 이상주의적 경제민주화 논리의 결합


7. 맺는 말– ‘글로벌 스탠다드’의 허상(虛像)에서 벗어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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